북 소월, 남 목월, 中都에는 ‘용래’

[특집] 논산강경 시인 박용래 40주년 기념

놀뫼신문 | 기사입력 2020/11/29 [22:26]

북 소월, 남 목월, 中都에는 ‘용래’

[특집] 논산강경 시인 박용래 40주년 기념

놀뫼신문 | 입력 : 2020/11/29 [22:26]

[특집] 논산강경 시인 박용래 40주년 기념

북 소월, 남 목월, 中都에는 ‘용래’

 

 “2020년 11월 21일은 박용래(朴龍來, 1925~1980) 시인이 작고한 지 40주기가 되는 아주 뜻깊은 날이다.” 문학평론가인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이 최근 발표한 논문 『눈물과 정한의 서정시인 박용래의 생애와 작품세계』첫 구절이다. 차제에 논산 강경 시인 박용래와 40주년 여행을 떠나본다.    


 

대전의 3대시인 박용래 40주기 특별전 7개월

 

“논산은 시인의 고장입니다. 김관식, 박용래 시인 등 작고 시인뿐 아니라 김소엽, 윤문자, 권선옥, 윤제철, 장석주, 윤효, 이채민, 김진성, 나희덕, 길상호, 김산 시인 등 많은 시인을 배출한 고장이지요.” 시 노래 가수 신재창이 열거하는 논산시인 화이트리스트이다. 이 중에서 올해 각광을 받는 시인은 작고 40주년이 되는 박용래 시인이다. 그런데 그곳이 그의 출생지 논산이 아니라, 그가 청년기부터 살았던 대전이다. 

대전 옛 충남도지사 공관이던 곳이 현재는 ‘테미오래’라는 시민의 집으로 변모해 있다. 여기 1호 관사에 지난 5월부터 시인 박용래 40주기 특별전이 개최되고 있다. “숨은 꽃처럼 살아라”를 주제가 걸린 ‘시인 박용래 대전문학기록 아카이브 특별전’이 이달 말 마감된다. 그의 40주기를 기념하여 열린 특별전에는 ‘까마귀처럼’, ‘동백 동인지’ 등 희귀자료도 최초 공개되었다. 박시인의 둘째딸 박연(朴燕) 화가가 테미오래 작은 미술관에서 시화전을 개최하고 있다.

특별전이 열리는 동안 시극(詩劇)도 두 차례 공연됐다. 10월 11일과 24일 양일에 걸쳐 배우 이동규, 박성범과 ‘극단 놀자’가 박용래 시극 <숨은 꽃>을 공연했다. 10월 17일에는 기념학술대회가 열리면서 특별전시관에서 전문해설도 가졌다. 10월 24일에는 박용래 시인을 연구해온 김현정 세명대 교수의 해설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11월 26일 오후 2시에는 목원대 한상철 교수(시인, 문학평론가)의 해설과 강의가 마련돼 있다. 

 

강경야행에서 만난 시인 박용래, 신현태 

 

대전은 이렇게 다채롭지만, 논산에서 박용래 시인에 대한 기억과 기념은 어떠한가? 명맥을 이어가는 정도라고나 할까..... 2020강경문화재야행 3일차 프로그램은 시낭송 콘서트였다. https://youtu.be/7mLGwwzNCQA 클릭하면 나오는 33분짜리 동영상 <시를 통해 만나는 강경>에서 우리는 강경시인 박용래를 만날 수 있다. 이날 나태주의 시 “강경”은 윤숙희 낭송가가 강경포구에서 낭송하였다. ‘박용래 시인을 추억하며’라는 부제의 “강경” 시에는 ‘강경’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는 시해설이 이어진다. 마지막 시는 박용래의 “황산메기”였다. 김재신 씨가 애절하게 읊는 옆에는 신현태 교사(대건고)가 기타연주로 함께 하였다. 이어서 신현태 씨는 황산메기를 자작한 시노래로 열창하였다. 이 시에 대한 정순진 전대전대문예창작과 교수의 해설이 뒤따랐다.

“박용래 시인은 강경이 낳은 한국 대표 시인으로 시와 술과 눈물로 한생을 수놓은 분이죠....‘황산 메기’는 옥녀봉 발부리에 있는 부곡강의 당대 상황을 노래한 시입니다. 박용래 시인은 주로 스러지는 것, 어스름한 것, 설운 것을 노래하였는데 칠산 앞바다의 조기와 흑산도 홍어로 만선을 이룬 배들이 금강에 즐비하던 시절, 그 흥성한 생기가 강경을 전국 3대 시장에 하나로 만들었던 시절을 보고 자란 시인에게 당대의 부곡강은 섧디 설운 감회를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 고향에 남아 있는 옛것은 산업시대에 공해로 병들고 생태에 변화를 일으켜 눈먼 애꾸눈이 되었는데 밀물에 슬리고, 썰물에 뜨고 목이 메고 노을 밴 체 살더라는 것이죠...사람, 사랑, 살다 모두 ‘ㅅ’으로 시작하는 낱말이네요. 스러져가는 생명을 사랑한 사람의 서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시입니다.” 그녀의 해설과 그날 낭독된 강경시 해설은 본지 인터넷판에서도 볼 수 있다.(nmn.ff.or.kr에서 #정순진 검색)

2020년 대전에서 선보인 박용래 본격 시극은 2017년 가을, 논산출신 박용래 시인의 삶을 담은 “눈물의 시인 박용래를 추억하다”라는 시극에서 출발한 감도 없지 않다. 이때도 논산대건고 신현태 교사는 통기타 반주로 박용래 시인의 시 ‘황산메기’, ‘엉겅퀴’ 등 시노래를 불렀다. 박시인과의 인간적 교감을 담은 신현태 교사의 특별기고는 별도 박스기사로 해서 소개한다.

 

 

신상구 박사가 보여주는 한국3대시인 박용래

 

박용래, 그는 누구인가? 논산, 대전, 대한민국에서 박용래는 어떤 위상인가? 박용래의 삶을 객관적으로 조명한 논문이 최근 발표되었다. 논산 대전과 거리 있는 충북 괴산 출생으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의 손을 통하여 탄생한 논문 <눈물과 정한의 서정시인 박용래의 생애와 작품세계>이 그것이다. 이 논문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 박용래 서정시인의 생애와 업적
  2. 박용래 서정시인의 작품세계
  3. 박용래 서정시인에 대한 한국문단의 평가

대표 저서『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를 저술한 필자 신상구 소장은 ‘대전시(大田詩)600년사’를 집필하던 중 박용래의 진면목에 심취하면서 이 논문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시인 박용래 대전문학기록 아카이브 특별전’도 영향을 주었다. “그리하여 박용래 시인은 한성기 시인, 임강빈 시인과 함께 대전의 3대 시인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그리고 한 시절 사람들은 ‘북에는 소월이요 남에는 목월, 그리고 中都(대전)에는 용래’란 말을 하기도 했다.” 이 논문 말미에 정의된 것처럼, 박용래는 논산보다 대전이나 전국시인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그러나 논문 필자는 박용래를 대전보다 논산으로 끌어오고자 의도한다. 잠시 그의 논문 엿보기를 해보자.

 

[글] 이진영 기자

​[사진] 양해일 대전소셜미디어 기자단

 

▲ 신상구     ©

  

박용래 시인의 고향은 부여와 강경 두 곳이다. 조재훈 시인은 부여가 박용래 시의 태반(胎盤)이라고 한다면 강경은 박용래 시의 육체라고 언급한 바 있다.....한번 눈물보가 터지면 밤새도록 울어 사람들은 박용래 시인을 가리켜 ‘황색의 시인’ 또는 ‘눈물과 정한의 시인’이라고 불렀다.   

1999년에 대전일보가 박용래 문학상을 제정해 운영한 바 있다. 2005년 7회 수상자를 낸 이후에 다시 시행되지 않고는 있지만, 2000년 제2회는 나태주 시인이 『슬픔에 손목 잡혀』로 박용래 문학상을 수상했다. 

1984년 10월 대전 보문산 사정공원에「저녁눈」이 새겨진 박용래 시비가 건립되었다. 1996년에 논산시는 논산공설운동장에는「겨울밤」이 새겨진 박용래 시비가 건립되었다.「겨울밤」은『박용래 시선 강아지풀』에 실려 있는 짧은 시인데, 중학교 2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에 게재되어 있는 명시이다. 대표 시집인「싸락눈」이 고등학교 2학년 문학교과서에 게재되어 있다. 이런 내용들이 총망라되어 있는 신상구 국학박사의 박용래 논문 전문은, 본지 인터넷판에 실려 있다.

[인터넷판 링크] 신상구 논문 『눈물과 정한의 서정시인 박용래의 생애와 작품세계』 = (nmn.ff.or.kr에서 #신상구 검색)

 

[특별기고] 

박용래 시인에게 바치는 나의 ‘시노래’ 

 

내가 박용래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1972년 가을에 대전에 있는 서양화가 권영우선생님의 화실에서였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림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시절이었지요.

그 당시 서양화가 권영우 선생님은 서울에서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서대전, 지금 세이백화점 맞은편에 처음 화실을 열었습니다. 박용래 선생님은 늘 문인들, 음악인들, 화가들을 좋아하셨는데 대전에서 활동하던 화가들 중 특별히 권선생님을 아끼셨어요. 권영우 선생님 또한 박용래 시인 못지않게 맑고 순수한 영혼을 지녔고, 그런 작품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박용래시인의 집이 화실과 아주 가까운 서대전사거리라서 자주 들르셨기 때문에, 저도 가까이 뵐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시인의 딸도 권영우 선생님의 지도를 받게 되었지요. 

그 뒤로 선생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8년 동안 인연은 계속되었고, 저는 슬픔이라기보다는 고통에 가까운 시인의 창작활동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시에는 문외한이었던 저도 어느새 뒷주머니에 반으로 접힌 시집을 꽂고 다니게 되었구요. 

시인이 돌아가시고 세 해 뒤 논산에서 살게 되면서 시인의 발자취를 더듬게 되었습니다. 강경 포구 억새밭에서 ‘황산메기’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곡을 붙이게 된 것이 시인을 노래하게 된 처음이었습니다. 그 뒤로 선생님의 시 중에서 정말로 좋아한 시 몇 편에 곡을 붙이게 되었지요. 누구에게 들려줄 만한 음악적 소양이나 솜씨를 가진 것도 아니었구요..... 그냥 기타 가락에 얹어 흥얼거리며 혼자서 시인을 추억하는 저만의 ‘박용래 시읽기’ 작업이었습니다.

미술을 전공한 저는 논산대건고등학교 미술교사로 부임하게 되었고, 정말로 우연한 계기로 아이들과 함께 중창단을 만들고 지도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시절 크게 유행하던 통기타 열풍에 휩쓸려 기타를 배우게 되었는데, 그 때 배웠던 기타 솜씨가 기본이 되어 지금까지 아이들과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살게 되었지요.

2000년 박용래 선생님 20주기 기념 문인들의 모임이 논산에서 열렸을 때 아이들과 함께 ‘황산메기’와 ‘엉겅퀴’를 부른 것을 처음으로 2~3년에 한번씩 열리는 문화원행사나 시낭송회에서 용감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2020년 박용래 아카이브 전람회가 대전에서 열렸습니다. 박용래 선생님 딸인 화가 박연의 청으로 아카이브전 구석에 제 악보를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 말로 다하지 못할 영감을 받고서 살아가는 은혜를 조금이나마 보답하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박용래 시인은 논산의 시인이십니다. 영원한 논산사람이구요. 논산의 들판과 풀잎들과 흙내음, 논산사람의 사랑과 서정이 그대로 시인의 시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논산사람은 박용래 시인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근현대 시인들 중에 박용래 시인이 차지하고 있는 문학적 위치와 의미는 제가 무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시와 삶으로 보여준 시인의 향기를 수많은 문인들과 예술가들이 기리고 있는데, 오히려 논산 사는 사람들은 정작 시인과 시를 잘 모르게 된 현실이 안타깝고 슬픕니다. 

선생님의 시를 노래할 목청은 아니지만, 논산의 언덕과 들길을 걷다가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혼자서 나지막이 부르는 제 노래 소리가 선생님의 시와 삶의 향기를 조금은 이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그럴 때마다 기타를 잡습니다. 

 

 

- 신현태(대건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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